미녀들의 도시로 유명한 우크라이나.
나는 군중심리, 모방심리를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은 믿지도 않고 오히려 부정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하기 전까지는 판단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에 미녀가 많다는 무성한 소문과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중에 직접 우크라이나에 가 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는 의문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여행하게 되면 주변사람들에게 객관적인 사실만 말해줘야겠다 라는 생각,
또는 '에이 소문만 그렇고 별로 아니더라' 라고 말하게 될 줄 알았다.
위 두 사진은 맥도날드에서 찍은 동영상의 캡쳐본이다.
그냥 우리가 앉은 앞, 옆 테이블의 여자들인데 예전의 한국 속옷 모델들과 견주어보아도 차이가 없어보였다.
우크라이나에서 보이는 뚱뚱하지 않고 젊은 여자 열 명중 한,두 명은 엄청 이쁘고 나머지 대부분은 전형적인 러시아 미녀상이었다.
우리가 처음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설 때는 이미 2차 휴전 협정까지 체결 된 상태였지만 산발적인 충돌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전시 상황과 다름 없었다.
국경을 넘어서는 입국소부터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신분, 여행 목적, 출국계획 등을 상세히 물어왔고 가방 검사까지 했다.
그 입국소에 앉아 있던 군복을 입은 아줌마가 내가 처음 본 우크라이나 여자였는데 여배우 처럼 이뻐서 약간 놀랬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예약한 호스텔로 찾아갔고 거기서는 더 크게 놀라게 되었다.
영화 '호스텔'을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동유럽에 있는 한 작은 도시의 호스텔에 남자 관광객이 오게되면 같은 호스텔의 예쁜 여자들의 미인계에 홀려 그날밤 술을 마시다가 기억을 잃게 되고 잠에서 깨어내면 고문실에서 돈을 주고 살인을 즐기는 사람들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예약을 했던 호스텔에 도착하자 마자 형과 나는 그 영화를 떠올렸다.
호스텔의 관리자가 부엌을 보여주려고 문을 열었을때, 부엌 안에는 정확히 여섯명의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들은 하나같이 날씬하고 이뻤으며 우리에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호스텔을 가 본 사람이라며 알 것이다. 처음 호스텔에 와서 부엌 문을 열었는데 여자만 여섯명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을 뿐더러, 하나같이 날씬하고 예쁜데다가 웃으며 수줍게 인사하는 모양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인지...
형과 나는 배정받은 방으로 돌아오자 마자 "이게 뭐냐", "뭔가 수상하다", "영화 호스텔 같다" 며 공감했다.
심지어 그 여자들 중 한명은 우리와 같은 방이었다.
한번 들어가기가 어려운 우크라이나인 만큼 꽤 오랜시간 호스텔에 머물렀다.
전쟁땜에 떨어진 환율은 맥도날드의 햄버거 셋트가 한화로 1000~2000원 대 수준인걸 보면 동남아보다 훨씬 싼 걸 알수있었고 그만큼 오래 머물기도 부담이 없었다.
어여쁜 호스텔의 여자들은 주변 학교의 학생들인데 잠깐 머무는 것이었고, 동유럽 여자들인 만큼 문화적으로 보수적이기 때문에 서유럽 여자들에 비해 수줍음을 타고 조용한 성격인 것 같았다.
호스텔 관리자 중 한명과 형은 동갑이었는데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음식을 건네주고 같이 운동하며 친구가 되었고 우리가 떠나는 날 문을 잠그며 가지말라고 아쉬워했다.
우리가 오데사에서 머무는 동안은 좋은 기억만 있었다.
친절한 사람들과 미인들, 그리고 조용한 분위기, 전쟁 탓에 내려간 환율 때문에 말도 안되게 싼 물가까지...
오데사를 벗어나 헝가리로 가고자 버스 터미널로 왔을 때 였다.
담배를 피고있는 우리에게 경찰로 보이는 젊은 두 남자가 다가왔다.
경례로 인사를 하며 격식을 차리는 것 처럼 보였는데 잘 못한 것이 없는 우리 눈에는 그저 말거는 사람들 중 한명으로 느껴져서 왜그러냐는 표정으로 계속 담배를 폈다.
두 경찰은 어이가 없었는지 '내가 경찰인데 지금 담배를 안 꺼?' 라는 듯한 제스처로 담배를 끄라고 강요 했다.
경찰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나랑 비슷한 또래거나 그보다 어려보이는 데 경찰 포스같은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왔다.
통역하기를 저 둘은 경찰인데 우리의 신분증을 보고싶어 한다며 여권을 제시할 것을 권유 했고 우리는 실제 여권을 함부로 제시하면 불이익을 받을수도 있다는 말이 떠올라서 미리 준비해둔 사본을 제시했다. 사실 누군지도 모르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만만해보이는 애들에게 순순히 여권을 건네기는 싫었다.
여권 사본을 받은 경찰은 자기를 무시하는듯한 행동에 화가 났는지 갑자기 자기들을 따라오라고 했다.
옆에 통역아저씨도 있었지만 한패인지 아닌지도 알수 없는 상황에서 어디까지 따라가야 하나 하고 생각할때 쯤 터미널 안에 위치한 경찰업무실에 도착했다.
그때부터는 진짜 경찰이라는 것도 확인 되었고 그 좁은 방 안에 들어가서 감금되는 순간 일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들은 여권제시를 거절하고 사본을 준 것을 질타하며 계속 트집을 잡더니 우리의 가방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부패한 경찰들이 있는 나라에서의 피해 사례들을 보면 자기들이 미리 준비한 마약 등을 가방에서 나온 척 하며 마약 소지 혐의로 몰아 세우고 수 십, 수 백만원을 요구한다는 경우를 본적이 있다.
다행히 그런 것은 아닌 듯 했다.
잠시 후 본격적으로 속내를 드러냈다.
"우크라이나에 왔으면 200불의 입국료(?)를 내야 된다. "
'결국 이런거였군' 하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필요한 비용은 다 지불했고 더 이상 낼 돈이 없다" 며 계속 우겼다.
말도 안되는 이유를 만들며, 또 한 명은 옆에서 인상을 쓰며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지만 깡마르고 어린 두 경찰이 어설프게 공포분위기를 조성 한다고해서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진 않았다.
형은 책임감 때문에 더 심각하고 조심스러웠을 테지만 난 그 상황이 한편으로는 '그냥 얘네 무시하고 가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귀찮고 짜증이 났다.
"한국 영사관이든 입국 사무소든 전화를 해봐라, 니가 말하는 그 비용들 다 지불했고 더 이상 낼 돈 없다"
며 배짱부리는 우리와 지속적으로 이유를 바꿔가면서, 잘 안되니 점점 가격을 내려가면서까지 돈을 요구하는 경찰은 수 십분간 대립했고 결국 경찰의 한마디에 화해하고 끝이 났다.
"그럼 커피 한잔하게 20흐브리냐(900원)만 줘"
우린 돈을 준다는게 자존심이 상했지만 벗어날 수 있는것에 안도하며 20흐브리냐를 줬고,
경찰들은 악수를 하고 웃으며 말했다.
"웰컴 투 유크레인"
출국하는 길이라니까 웰컴같은 소리 하고있네...
사실 구소련 국가들의 경찰은 악명높기로 유명한데 이 정도로 끝난 게 정말 다행이었다.
후진국의 경찰들이 누명을 씌워 수 백만원을 뜯어내거나 거부할 시 투옥 시키는 경우들과 실제로 많은 여행객들이 돈을 뺏기는 것을 보면 우리는 운이 좋은 케이스로 볼 수 있었다.
그들이 못된걸 보고 배운 어린 신입 경찰들이 아니라 제대로 부패한 베테랑 경찰들이었다면, 마음 먹고 우리를 잡을려고 했다면 이렇게 쉽게 나오지는 못했을 거고 배짱이 먹혔을 리도 없다.
거기다 우리나라가 유명해 졌다고 한 들, 힘 있는나라가 아닐 뿐더러 해외에 있는 영사관에 도움을 청해서 제대로 도움받았다는 사례는 본적이 없다.
우크라이나에서의 행복한 시간들을 더럽게 장식해 준 경험이었고 아직 이정도로 부패한 경찰들이 있다는 사실이 당시에는 조금 충격이었다.
그래도 러시아어를 공부해서 꼭 한번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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